디아스포라의 지식인-현대 문화연구에 있어서 개입의 전술

레이초우 / 장수연, 김우영 옮김 / 이산 2005


p25/ 근대 서양 제국주의 역사에서 중국은 외국의 식민세력에 완전히 지배된 적이 없었다. 표면적으로 없었다고 해도 인민이 겪은 고난을 감안할 때 중국의 경우를 덜 '제3세계'인 것으로 볼수 없다. 중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식민지배자는 그들 자신의 정부이다. 그들 자신의 체제와 그들 자신의 언어와 그들 자신의 문제를 계속 가지고 있었으며 중국지식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서양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며, 문화적 생산은 구조상 단순히 적대적이기보다는 나르시시즘적이다. 거기에 적대적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 "중국 유산, 중국의 전통, 중국정부" 그리고 이것들의 변종을 향한 적대감이다.

p31/ 마오주의자들은 프로이드와 라캉의 '결여' 개념을 이용하여, 암스트롱과 테넌하우스가 "표상으로서의 폭력"이라 부른 "타인을 대신해서 말하기를"정당화한다. '결여', '서발터니터', '희생'과 같은 개념을 무차별적으로 들먹이면서 자신의 타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강조, 결과적으로 피억압자에게서 항의와 정당한 요구의 말까지 박탈해버린다.

p33/ 디아스포라 의식이란 역사적 우연이라기보다는 지적인 현실, 즉 지식인이 처한 현실상황이 아닐까. 국경문제의 중심에 있는 것은 타당성과 소유의 문제이다. 국경과 관련하여 실천할수 있는 일 하나는 현존하는 타당성의 개념을 파괴하고 대체하고 확대함으로써 새로운 타당성을 예견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경개념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장(field)이라고하는 공간적 개념의 필수적 수반이다. '장'의 개념은 '헤게모니'(어떤 집단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이나 지위)와 유사하다. 장의 형성은 자기 문화를 사회의 모든 수준에 전파할 수 있는 지배적 집단의 출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p40/ 2차 세계대전시기 중국과 영국은 자신이 필요할 때 홍콩에 재정적 또는 다른 형태의 원조를 요구했지만 홍콩인의 행복을 고려하진 않았다. 이러한 주변적 위치는 홍콩인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구성된 것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관찰자적 특권을 만들어내고 억압의 이상화에 회의를 품게 했다. (조선족도 관찰자적 특권을 갖고 있지 않을까?)

p 43/ 1997년 정식으로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날 때, 홍콩은 '모국'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식민권력에 양도될 것이다.

 

 

디아스포라란 무엇인가?

디아스포라'란 용어는 원래 유대인의 민족적 이산(離散) 상황을 뜻하는 용어지만, 오늘날에는 전쟁·식민화의 역사나 경험과 깊이 결부된 난민·이민 상황을 가리키며, 본래의 의미보다 넓은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임스 클리퍼드는 디아스포라는 "한편으로 국민국가/동화주의적 이데올로기와 긴장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토착적, 특히 자생적 주장과도 긴장관계를 갖는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디아스포라는 끊임없이 현재 살고 있는 장소와 고향/고국 사이의 뒤엉킨 긴장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국경을 초월한 다른 문화와의 느슨한 절충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며 특정 지역의 역사나 문화의 본질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절충주의나 본질주의를 비판하고 그 두 가지를 옹호하는 근대에 대항하여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성을 갖는 개념인 것이다.


레이 초우는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홍콩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미국의 브라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홍콩인'으로서, 미국의 '아시아계 이민'으로서, '여성'으로서 레이 초우는 자신이 '타자'로서 응시를 받아왔던 경험에 근거하여 '타자'의 시선으로 권력자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맞받아친다. "내 옷 밑에는 더 이상 드러낼 비밀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그 비밀이란 건 너의 환상일 뿐이야"라고.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레이 초우가 소개하는 자기의 경험이 반영된 에피소드 하나는 지식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율을 느낄 정도로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논문은 한 학회에서 내가 불참한 가운데 발표되었다. 내 글에 대한 토론자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사람[문화대혁명을 경험한 본토의 중국인]이었다. 그 발표문에서 나는 중국어를 번역하면서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이 실수를 꼬투리 잡아 그 토론자는 논문 전체를 쓰레기로 취급하면서 청중에게 결국 "그녀는 홍콩 출신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이처럼 나의 지리적 기원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표명한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홍콩에서 온 이 서양화된 중국여성, 이 문화적 사생아가 어떻게 중국과 중국지식인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는가? 만약 내가 중국을 대표한다거나 진정한 중국인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면 수치심에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숨어 있는 문화적 폭력을 누구보다 빨리 인식했어야만 했다. 중심주의적인 거대한 억압을 경험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그와 같은 사람이 그런 중심주의의 영속화에 그토록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현대중국과 오늘날 그 밖의 모든 지식인이 도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전략화된 현실의 으뜸가는 예이다. "

세계화와 글로벌 스탠다드를 외치는 우리의 주변에도 이런 문제는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범람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타자—여성,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실업자, 특정지역, 그 밖의 수많은 소수자—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리고 미셸 푸코의 말처럼 지식인을 권력의 대상이자 도구로 전환시키려는 권력형태에 맞서서 저항할 수 있는 지식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스스로를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지식인조차도 자신의 학식과 말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지식권력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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