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인 작가의 디아스포라 글쓰기』

- 윤정화, 혜안, 2012

 

 

재일한인 작가의 디아스포라 글쓰기



재일한인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도록 해주는 공간이라는 공통항을 끝없이 모색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조건이 지속되는 한 타자로서 느끼는 배제와 그로 인한 부유의 서사는 지속될 것이다. 자신의 거주 공간에 대한 의식의 변모 과정은 디아스포라의 글쓰기를 통해 서사적으로도 재현되며 이 공간에 대한 인물의 기억과 문학적 형상화의 변화가 현재까지의 재일한인작가의 의식세계의 주조를 형성하고 있다.

해방 후 1960년대까지 재일 한인작가 1세들:
차별과 빈곤의 일상으로 고통 받으면서 정주지의 외부에서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을 상상하며 살았다. 이들은 조국에 대한 동경과 귀국에 대한 염원으로 상상으로 구축된 조국을 역사적 서술 공간 속에서 형상화한다.- 역사소설에서 구성된 디아스포라 주체는 조국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당위적 의무로 인식하고 영웅적인 인물들을 쓴 위인전을 생산하여 차별로 인한 내면화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다

1970년대 이후 재일한인 2세대들:
전세대의 불우와 사회의 배제로 인해 고통 받는 부모로부터 내부 공간인 ‘집’에서도 안온한 체험을 하지 못한다. 이들은 외부와 내부에서 이중적 억압을 경험하면서 민족의 역사에 의지하기보다 개인의 회상으로 구성된 유년의 시 공간속으로 회귀하게 된다. 재일한인 2세대는 사회적으로 자신을 위장하면서도 또한 위장을 하며 사는 자신을 자책하여 전 세대보다 더 큰 고뇌로 ‘말할 수 없는 자의 주체’로서 자신을 표상한다.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회성, 김학영은 『다듬이질 하는 여인』, 『우리 청춘의길목에서』, 『반쪽발이』, 『人面岩』, 『죽은 자가 남긴 것』, 『얼어붙은 입』, 『錯迷』, 『외등없는 집』, 『알콜 램프』에서 공통의 서사를 창출한다

80년대 이후 현재 재일한인 3세대:
과거보다는 현재적 시간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80년대 이후의 재일한인은 스스로의 모호한 정체성을 증언하는 것으로 차별에 저항하고 있다. 존재하나 부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존재로서 파악되어 온 자신의 타자성을 차이의 집단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외부에서 내부로 경계를 넘고 있다.

 

80년대에서 2000년대에 작품을 발표한 양석일· 이기승· 이양지· 유미리· 현월의 『피와 뼈』,『달은 어디에 떠 있나(택시광조곡)』,『잃어버린 도시』,『나비타령』『Y의 초상』,『해녀』,『각(刻)』,『유희』,『그림자 없는 풍경』,『한여름』,『물고기의 축제』,『해바라기의 장례』,『가족시네마』,『그늘의 집』,『나쁜 소문』등에서 이러한 경향이 발견된다.

이들은 우선 호스트랜드와 홈랜드 양쪽 모두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민족적 호명’인 ‘조선인’, ‘한국인’의 기표를 거부한다. 이들의 작품 속에는 민족이나 국적의 호명이 사라지고 이들의 차이적 정체성이 이주공간의 혼종성을 드러내는 경계적 명칭으로 다양하게 표명되며 자신을 표상하는 이름을 창조한다. 이들은 현실에서 도주하지 않고 고통을 직시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반복적으로 부정하는 사유행위를 통해 디아스포라로서의 삶을 증언한다.

 

이들이 도달한 타자적 인식은 사라지지 않고 생존함으로써 타자로서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 최고의 저항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회상으로 과거 공간으로 회귀하는 것과는 달리 현재의 시점에서 그 기억의 유의미성을 탐구한다. 즉 자신들이 위치해 있는 무공간의 현재에서 자신들의 집단적 공간의 의미를 찾아낸다.

이 세대에 이르러 ‘디아스포라’라는 부정적인 상황적 조건은 단지 부정적인 현상적 조건으로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아정체성을 모색하는 새로운 차원의 ‘디아스포라’로 적극적으로 전환된다. 실천적 행위로서의 글쓰기로 인해 생존이라는 최고의 목표 앞에서 존재를 입증하고 증명함으로써 외부에 부재하는 존재로서가 아닌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3의 종족으로서 재일한인은 거듭나고 있다. 여러 장르의 경계를 넘어가며 글을 쓰는 선택적 행위는 새로운 자아를 탐색하는 의식과정과도 연관되는 의의를 획득한다.

결론적으로
재일 한인작가들의 글쓰기는 민족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개인으로 응축되는 주체를 표현하는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이는 침잠과 내면화의 과정이 아니라 결국 ‘재일한인’이라는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을 정립해 내는 생산적 행위임이 밝혀진다. ‘변환’은 새로운 주체로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절대명제이다.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은 글쓰기의 형식적 변환과도 연동되고 있음을 본고에서는 확인할 수 있었다.

기타 참고 내용

재일한인의 문학은 위에서 언급한 디아스포라의 의식 양상을 감안할 때 디아스포라 글쓰기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특정한 경계, 사이에서 삶을 영유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적 존재인 재일한인이 현재에 이르러 호미바바가 말하고 있는 혼종의 공간속에서 생존을 위해 변증법적으로 완결된 혼종성이 아닌, 공존하는 혼종성66), 무수한 주체의 정체성, 이미지간의 끊임없는 경쟁이나 이질적인 것들의 뒤엉킴과 연계의 양상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일한인은 한국에서부터 집단적인 민족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정주지에서 타자와 사회적 관계를 맺는 동시에 배제당하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발터 벤야민은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어떤 것인가라는 자기규정은 모든 문화가 실천하는 활동 가운데 하나’70)라고 하였다.

p81 각주 : 정치적인 망명으로 고국으로 귀환할 수 없는 작가 살만 루시디는 ‘나와 내가 서술하려는 대상 사이에는 흘러간 시간과 이민이라는 이중의 차단막이 놓여 있었다.(중략) 나의 일은 더 이상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우리가 현재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과거를 재창조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억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것이다.’ 알라이다 아스만지음 , 변학수 백설자 채연숙 옮김, 『기억의 공간』, 363쪽

‘정체성은 다른 것으로부터 그것을 구분해낼 수 있도록 하는 지속적인 동일성과 통일성’이라고 할 때 재일한인의 정체성은 지속적인 동일성을 확보할 공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과 모호함을 함의하게 된다. 따라서 재일한인의 글쓰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규정하기 위한 자기실천의 글쓰기를 수행해야 했던 것이고 기억의 공간이 어떻게 서사적으로 재현되는지를 고찰하는 것은 재일한인의 정체성을 밝히는 잣대가 된다

호미바바는 기억이란 ‘결코 성찰과 회고의 고요한 행위가 아니며, 고통스러운 재구성이자 현재의 외상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해체된 과거를 한데 모으는 것이라고 하였다. 디아스포라적 주체가 기억에 대응하는 양식에 주목해야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재현해 내고 있는가를 봄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이산자의 의식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자신이 아닌 타자를 매개로 하고 그것을 거치지 않으면 만들어질수 없다.’ 정체성을 만들 때 철저히 배제되는 타자를 다시 한 번 제시해야만 그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별, 민족, 계급 등에 따른 배제와 타자화에 의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부여받듯이 글쓰기 역시 이 같은 구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타자화의 조건인 디아스포라라는 현실적 조건이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작가의 기억과 공간의식, 공간을 이동하는 행위의 층위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언어에 대한 의식을 중심으로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각주 312, 사르트르는 “언어는 근원적으로 대타존재이다.”라는 명제를 제출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주체는 언어를 매개로 하여 타자와 관계를 맺을 때 타자를 ‘언어에 의미를 주는 존재’로서 체험하게 된다. 그 결과 주체는 자신의 언어가 타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으며,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의미를 전하고 있는지, 자신이 의미있는 존재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의미가 타자에게서 실현된다고 하는 것은 발화 주체가 의도한 바와 타자에게서 실현된 의미사이에 괴리와 낙차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할 때 언어기호가 주체의 의식 속에 현전하고 있는 의미를 지시하고 있다는 생각은 불가능해지며, 언어기호와 지시대상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회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언어가, 타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타자가 받아들인 의미 역시 고정된 지시대상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 역시 의미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언어를 매개로 하여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주체가 누군가에게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을 때 발생했던 과정을 다시 되풀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취향의 정치학-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와 쓰기』부르디외, 홍성민, 현암사, 2012.

 

피에르 부리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와 쓰기/홍성민 지음


p38 부르디외의 서문은 칸트에 대한 비반으로부터 시작한다.

플라톤

자연의 질서는 신이 창조, 예술이란 결국 자연을 모방할 뿐(재현),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

이데아의 세계가 보편자로서 존재

아리스토텔레스

모방은 인간의 창조적 본능, 자연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예술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인생의 즐거움.

사물내에 개체적으로 구현되는 것이 바로 보편성을 갖는다

보편성과 개체성의 대립은 고대 철학에서부터 논쟁의 핵심 대상이었다.

근대 사상사에서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

 

칸트


● 개인들은 사물을 바라보면서 일차적으로 감각판단에 의존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의 개체적인 감각판단은 반성적 판단으로 귀결되어 보편적 미학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

개체적인 감각판단 → '반성적 판단' → 보편적 미학

그 이유를 칸트는 사람들은 '공통감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시말하면 보편적으로 아름다움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이 혹은 신분을 떠나, 똑같이 미적 쾌락을 느낄수 있는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인간의 순수 이성이 자연의 법칙과 같이 인간성에 본래적으로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감각적 판단을 보편성으로 승화시키는 공통감각은 인간 본연의 능력이라 본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이러한 칸트의 미학 이론에 반대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림이나 자연 풍광을 보면서 느끼는 감성들은 계급적으로 차이가 난다. 계급적이란 말은, 한 사람의 미학적 취향이 교육과 훈련에 따라서 다르게 길들여진다는 점을 가리킨다. 게다가 미학적 취향이 사회적으로 옳음/그름의 형식으로 작용하도록 강제력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칸트

미학적 판단의 궁극적 기원은 인간의 본성에 있다

진리, 윤리, 미학은 완전히 분리된 서로 다른 영역이다

부르디외

미학적 판단의 기준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리되어 있지 않다. / 미학적 취향은 현실세계에 대한 도덕-윤리성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교육 수준의 정도가 예술에 대한 고급 취향/ 대중 취향을 구별하는 계기가 되며, 거꾸로 예술에 대한 취향이 계급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도 있다.

서로 간에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일상 생활의 실천들이 사실은 매우 밀접한 취향의 논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일상의 문화가 사람들의 쾌락과 감성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감성의 형성 과정은 사회적 분류 체계로 작동함으로써 사회적 지배를 강화시키고 사람들의 저항의식을 억압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국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계급 지배를 유지시키고, 상층계급의 지배를 강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기제이다. 이렇게 보면 한 사회에서 상식적인것으로 인정된 평가의 범주를 바꾸고 이를 통해서 사회 세계 자체를 바꾸는 것이 계급투쟁의 중요한 목표가 된다.

 

디아스포라의 지식인-현대 문화연구에 있어서 개입의 전술

레이초우 / 장수연, 김우영 옮김 / 이산 2005


p25/ 근대 서양 제국주의 역사에서 중국은 외국의 식민세력에 완전히 지배된 적이 없었다. 표면적으로 없었다고 해도 인민이 겪은 고난을 감안할 때 중국의 경우를 덜 '제3세계'인 것으로 볼수 없다. 중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식민지배자는 그들 자신의 정부이다. 그들 자신의 체제와 그들 자신의 언어와 그들 자신의 문제를 계속 가지고 있었으며 중국지식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서양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며, 문화적 생산은 구조상 단순히 적대적이기보다는 나르시시즘적이다. 거기에 적대적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 "중국 유산, 중국의 전통, 중국정부" 그리고 이것들의 변종을 향한 적대감이다.

p31/ 마오주의자들은 프로이드와 라캉의 '결여' 개념을 이용하여, 암스트롱과 테넌하우스가 "표상으로서의 폭력"이라 부른 "타인을 대신해서 말하기를"정당화한다. '결여', '서발터니터', '희생'과 같은 개념을 무차별적으로 들먹이면서 자신의 타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강조, 결과적으로 피억압자에게서 항의와 정당한 요구의 말까지 박탈해버린다.

p33/ 디아스포라 의식이란 역사적 우연이라기보다는 지적인 현실, 즉 지식인이 처한 현실상황이 아닐까. 국경문제의 중심에 있는 것은 타당성과 소유의 문제이다. 국경과 관련하여 실천할수 있는 일 하나는 현존하는 타당성의 개념을 파괴하고 대체하고 확대함으로써 새로운 타당성을 예견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경개념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장(field)이라고하는 공간적 개념의 필수적 수반이다. '장'의 개념은 '헤게모니'(어떤 집단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이나 지위)와 유사하다. 장의 형성은 자기 문화를 사회의 모든 수준에 전파할 수 있는 지배적 집단의 출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p40/ 2차 세계대전시기 중국과 영국은 자신이 필요할 때 홍콩에 재정적 또는 다른 형태의 원조를 요구했지만 홍콩인의 행복을 고려하진 않았다. 이러한 주변적 위치는 홍콩인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구성된 것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관찰자적 특권을 만들어내고 억압의 이상화에 회의를 품게 했다. (조선족도 관찰자적 특권을 갖고 있지 않을까?)

p 43/ 1997년 정식으로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날 때, 홍콩은 '모국'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식민권력에 양도될 것이다.

 

 

디아스포라란 무엇인가?

디아스포라'란 용어는 원래 유대인의 민족적 이산(離散) 상황을 뜻하는 용어지만, 오늘날에는 전쟁·식민화의 역사나 경험과 깊이 결부된 난민·이민 상황을 가리키며, 본래의 의미보다 넓은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임스 클리퍼드는 디아스포라는 "한편으로 국민국가/동화주의적 이데올로기와 긴장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토착적, 특히 자생적 주장과도 긴장관계를 갖는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디아스포라는 끊임없이 현재 살고 있는 장소와 고향/고국 사이의 뒤엉킨 긴장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국경을 초월한 다른 문화와의 느슨한 절충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며 특정 지역의 역사나 문화의 본질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절충주의나 본질주의를 비판하고 그 두 가지를 옹호하는 근대에 대항하여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성을 갖는 개념인 것이다.


레이 초우는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홍콩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미국의 브라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홍콩인'으로서, 미국의 '아시아계 이민'으로서, '여성'으로서 레이 초우는 자신이 '타자'로서 응시를 받아왔던 경험에 근거하여 '타자'의 시선으로 권력자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맞받아친다. "내 옷 밑에는 더 이상 드러낼 비밀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그 비밀이란 건 너의 환상일 뿐이야"라고.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레이 초우가 소개하는 자기의 경험이 반영된 에피소드 하나는 지식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율을 느낄 정도로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논문은 한 학회에서 내가 불참한 가운데 발표되었다. 내 글에 대한 토론자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사람[문화대혁명을 경험한 본토의 중국인]이었다. 그 발표문에서 나는 중국어를 번역하면서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이 실수를 꼬투리 잡아 그 토론자는 논문 전체를 쓰레기로 취급하면서 청중에게 결국 "그녀는 홍콩 출신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이처럼 나의 지리적 기원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표명한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홍콩에서 온 이 서양화된 중국여성, 이 문화적 사생아가 어떻게 중국과 중국지식인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는가? 만약 내가 중국을 대표한다거나 진정한 중국인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면 수치심에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숨어 있는 문화적 폭력을 누구보다 빨리 인식했어야만 했다. 중심주의적인 거대한 억압을 경험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그와 같은 사람이 그런 중심주의의 영속화에 그토록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현대중국과 오늘날 그 밖의 모든 지식인이 도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전략화된 현실의 으뜸가는 예이다. "

세계화와 글로벌 스탠다드를 외치는 우리의 주변에도 이런 문제는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범람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타자—여성,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실업자, 특정지역, 그 밖의 수많은 소수자—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리고 미셸 푸코의 말처럼 지식인을 권력의 대상이자 도구로 전환시키려는 권력형태에 맞서서 저항할 수 있는 지식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스스로를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지식인조차도 자신의 학식과 말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지식권력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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